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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마다 다른 색, 왜일까?
공구를 오래 쓰다 보면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브랜드마다 고유한 색이 있고, 그 색은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밀워키는 빨강, 디월트는 노랑과 검정, 마끼다는 청록, 보쉬는 초록과 파랑. 공구함을 열어보면 로고를 확인하지 않아도 색만으로 어느 회사 제품인지 구분이 됩니다.
그런데 이 색들은 어떻게 정해진 걸까요? 인터넷에는 브랜드마다 그럴듯한 기원 이야기가 하나씩 붙어 있습니다. 문제는, 이 이야기들이 얼마나 사실을 확인해봤느냐입니다. 하나씩 파헤쳐보면 의외로 “정답이 있는 브랜드”와 “설만 무성한 브랜드”가 꽤 명확히 갈립니다.
브랜드 컬러는 왜 중요할까
전동공구 브랜드들이 컬러에 이렇게까지 집착하는 데는 실용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인식의 속도입니다. 로고를 읽는 것보다 색을 보는 것이 훨씬 빠릅니다. 현장에서 여러 브랜드의 공구가 뒤섞여 있을 때, 색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정보입니다.
둘째, 분실 방지와 구분입니다. 여러 작업자가 함께 쓰는 공사 현장에서는 내 공구와 남의 공구를 구분하는 게 생각보다 중요한 문제입니다. 물론 색만으로 분실을 완전히 막을 수는 없지만, 서로 다른 브랜드를 사용한다면 공구를 빠르게 식별하고 혼동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됩니다.
셋째, 시간이 흐르면서 색 자체가 브랜드의 자산이 됩니다. 처음에는 단순한 디자인 선택이었을 수 있지만, 수십 년간 한 가지 색을 고수하면 그 색이 곧 브랜드를 의미하게 됩니다.
그래서 더 궁금해집니다. 이 색들은 대체 어디서 시작됐을까요. 브랜드별로 하나씩 확인해보겠습니다.
🔴 밀워키는 왜 빨간색일까?
인터넷에는 “밀워키가 소방관과의 인연 때문에 빨간색을 선택했다”는 이야기가 자주 등장합니다. 소방차와 소방관을 상징하는 레드를 브랜드 컬러로 굳혔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사실일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확인되지 않습니다.
밀워키는 1918년 A.H. 페터슨이 포드사의 의뢰로 소형 드릴을 개발한 것을 시작으로, 1924년 지금의 밀워키 일렉트릭 툴 코퍼레이션으로 재창업했습니다. 다만 정확히 언제부터 레드가 브랜드 컬러로 자리 잡았는지는 명확한 1차 자료(초기 카탈로그, 광고 등)로 확인되지 않습니다. 창업 초기부터였다는 설도 있고, 1950년대에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정비하면서 정립됐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둘 다 신뢰할 만한 출처로 뒷받침되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소방관과의 인연” 설은 어떻게 봐야 할까요. 이 설이 성립하려면 최소한 두 가지가 확인돼야 합니다. 첫째, 밀워키가 소방·구조용 장비 사업에 뛰어든 시점. 둘째, 그 사업이 레드 브랜딩보다 앞섰는지 여부입니다. 그런데 앞서 살펴본 대로 레드가 정확히 언제부터 쓰였는지조차 확인되지 않는 상황에서, 이 인과관계를 “사실”로 단정할 근거는 더더욱 없습니다. 밀워키의 소방·구조용 특수 공구(차량 절단용 장비 등) 사업은 비교적 최근에 부각된 영역인 반면, 밀워키가 레드 이미지로 알려진 것은 그보다 훨씬 오래된 일이라는 정황은 있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날짜가 명시된 1차 자료는 확인되지 않습니다.
게다가 밀워키가 왜 레드를 선택했는지에 대해 회사 측이 공식적으로 밝힌 자료는 찾을 수 없었습니다. 즉, “소방관 때문”이라는 설은 그럴듯하게 들리지만 근거가 없는 이야기입니다.
✔ 팩트체크
❌ 소방관·소방차와의 인연 때문에 빨간색을 선택했다 → 확인되지 않음
▲ 정확히 언제부터 레드가 브랜드 컬러였는지도 확인되지 않음. “창업 초기부터”라는 설도, “1950년대에 정립됐다”는 설도 모두 근거가 약함
🟡 디월트는 왜 노랑과 검정일까?
밀워키 얘기를 듣고 나면 “이것도 결국 설이겠지” 싶으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정말 답이 있습니다.
디월트는 1920년대 목공용 레이디얼 암 쏘를 만들던 회사였고, 1949년 Black & Decker에 인수되어 오랫동안 그 산하 브랜드로 운영됐습니다. 그러다 1990년, Black & Decker는 디월트를 전문가용 브랜드로 재출범시키며 지금의 노랑·검정 컬러를 새로 입혔습니다.
이 리브랜딩을 주도한 담당 임원은 1992년 한 언론 인터뷰에서 색상 선택 이유를 직접 밝혔습니다. 노란색은 공사 현장의 안전 장비를 연상시키고, 매장 진열대에서도 눈에 잘 띈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Black & Decker의 기존 전문가용 라인은 목탄색 회색이어서 소비자용 검정 제품과 구분이 잘 안 됐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됐습니다.
정리하면, “취미용이 아니라 진짜 프로들의 장비”라는 메시지를 컬러로 던졌다는 흔한 해석은 실제로 근거가 있는 이야기입니다.
✔ 팩트체크
⭕ 산업 현장의 안전색(옐로우)과 시인성을 노렸다 → 확인 가능. 담당 임원의 언론 인터뷰 기록이 남아있음
🟢 마끼다는 왜 청록색일까?
“청록은 일본의 전통 색채 감각에서 왔다”는 설명을 보신 적이 있을 겁니다. 파란색과 초록색이 섞인 오묘한 색이 일본 특유의 미감을 반영했다는 것입니다.
이것도 공식 근거는 찾기 어렵습니다.
마끼다는 1915년 일본 나고야에서 전동기 판매·수리업으로 시작했고, 1958년 일본 최초의 휴대용 전동대패를 출시하며 공구 제조업에 뛰어들었습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지점이 있습니다. 초기 제품 사진을 찾아보면 지금의 청록색이 아니라 검정, 갈색, 올리브그린 계열이 많이 확인됩니다. 즉 청록은 창업 초기부터 정해져 있던 색이라기보다, 이후 브랜딩 과정에서 정착된 색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밀워키와 마찬가지로, 마끼다가 이 특정한 청록색을 왜 선택했는지 회사 측이 직접 밝힌 자료는 확인되지 않습니다. 일본 문화와 연결짓는 설명은 매력적이지만, 지금으로선 추측의 영역에 머물러 있습니다.
✔ 팩트체크
❌ 일본 전통 색채 감각(아오)에서 유래했다 → 확인되지 않음. 초기 제품은 애초에 청록색도 아니었음
⭕ 마끼다는 1958년 첫 전동공구 출시 이후 지금의 청록 이미지를 오랫동안 유지해왔음
🔵 보쉬는 오히려 목적이 명확합니다
밀워키, 마끼다까지 보고 나면 “결국 색상 유래는 다 미스터리인가” 싶어지실 겁니다. 그런데 보쉬는 조금 다릅니다.
보쉬 공구는 오랫동안 은색, 검정, 청록, 초록, 빨강 등 다양한 색으로 만들어졌습니다. 1960년대 들어 플라스틱 하우징이 보급되면서 색상 선택의 폭이 넓어졌기 때문입니다. 지금처럼 초록(DIY용)과 파랑(전문가용)으로 라인이 엄격히 나뉜 것은 1970년대부터입니다.
이 구분의 목적은 “왜 이 색인가”가 아니라 “왜 두 가지 색으로 나눴는가”에 가깝습니다. 답은 명확합니다. 가벼운 가정용 작업을 위한 제품은 초록, 매일 현장에서 쓰는 전문가용 제품은 파랑으로 나눠 소비자가 용도에 맞는 제품을 한눈에 고를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이 부분은 보쉬 공식 채널을 통해서도 확인됩니다.
즉 보쉬는 “이 색을 왜 골랐는가”보다 “왜 색으로 라인을 나눴는가”에 대한 답을 갖고 있는 유일한 사례입니다.
✔ 팩트체크
⭕ 그린(DIY)·블루(Professional) 라인 구분은 공식적으로 확인 가능함
▲ 다만 애초에 왜 초록과 파랑이었는지에 대한 설명은 확인되지 않음
결론
네 브랜드를 확인해보니, 색상 선택의 이유가 명확히 밝혀진 곳은 디월트 하나뿐이었습니다. 보쉬는 라인을 나눈 목적은 분명하지만 애초의 색상 선택 이유까지는 알 수 없고, 밀워키와 마끼다는 그 자리를 그럴듯한 추측이 채우고 있었습니다.
정확한 기원을 알 수 없다는 사실이 오히려, 브랜드 컬러가 얼마나 강력한 자산이 되었는지를 보여주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이유를 몰라도, 색만 보면 어느 브랜드인지 즉시 알아보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결국 브랜드 컬러는 처음부터 치밀한 전략의 결과였을 수도 있고, 시간이 지나며 자연스럽게 브랜드의 상징이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의 소비자에게는 그 이유보다도 색 자체가 곧 브랜드를 의미한다는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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